성장기가 아이들의 정신적 성숙이 이뤄지는 시간이라는걸 간과하고 유년시절을 지배하거나 방임하고 있는 면에서 본다면 지금 이 순간도 그 부분에 있어선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건 여전함. 다섯살의 정신적 성숙함으로 죽고 있는 노년이 절대다수인 지금 이 시대에도 어느 어떤 어른이 아이들이 문제라 탓할 수 있겠는가. 촉법소년으로 시끄러운 요즘도 다들 아이들 목칠 생각만 하지 그들의 성장에 대해선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으니. 사람을 사람으로 이끄는게 아닌 사람을 선별하겠다는 그 원식적인 발상으로 본다면 우리는 화려함으로 포장된 문명에 있을뿐 인류의 시작점으로부터 인간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박작가님이 끝까지 영조 커버쳐주려 했지만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 마냥 진행된 사도세자의 죽음 그리고 시호의 의미를 볼때 끝까지 애정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세자가 백성에 입힌 피해 물어준거는 폭군이 아닌 이상 당연히 해야는 것이고 진짜 아들을 미워하지 않고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면 누군가의 고변이 나오기 전에 아들이 뭐하는지 신경썼을 거고 그래서 비행을 막았을거 아닌가?
솔직히 까놓고 말해 영조가 세종처럼 일에 미친성군도 아니고, 검소하게 먹는척 하면서 당대의 비싼 고추장에 송이버섯 꿩고기 비벼 먹는게 일상이고 금주령 내려 남들 술 못먹게 해놓고 그동안 지는 술을 곡차라 우기며 신경써서 맛있게 쳐먹을 시도를 할 여유가 있는 작자인데 그 탐식 미식을 할 의지와 노력의 1할이라도 아들에게 썼으면 임오화변이 과연 일어났을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영조가 끝까지 아들을 미워했고 세손 이산이 태어나 그럭저럭 크니까, 여드름을 잘짜기 위해 고름이 커지길 기다리듯 사도를 끌어내리기 위해 비뚤어지게 방치했다고 생각한다. 사도세자에 대해서만큼은 조조보다 더 비정했다 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