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을 꼬인채로 보는 사람이 있는거 같은데, 실제로 조수미 선생님은 당시에 콘서트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가시려고 하다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가지 않았다고 해요. 왜냐하면 어머니께서 조수미 선생님의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을 위해서 공연하는게 아버지가 행복해하실거며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는 것을 말씀해주셨기 때문이에요.
이십대초반시절 모악기사에서 현악기 수리기사로 일하고 있을때 사장님 내외가 조수미 공연표를 구하셨는데 그날 갑자기 일이 생겨서 비싼표니 꼭 가보라고 하셔서 친구랑 어설픈 정장까지 차려입고 가서 생전처음 조수미 공연을 봤는데 오페라에 오짜도 모르는 제가 숨이 막히면서 가슴속에 응어리진게 터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 친구들은 대학 다닐때 저는 일찌감치 삶의 전선에 뛰어들어서 자존감은 한없이 낮고 늘 마음 한구석에서 자리잡고 있던 패배감 .. 알수없는 오페라곡이었는데 마지 저를 위해서 위로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찌나 울었던지 눈이 퉁퉁 부었던 기억이 나네요.
성악 전공자입니다. 이 영상에서 조수미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울음을 참고 계신 게 아니에요. 목 끝까지 타고 올라오는 울음을 간신히 삼키고서야 날 수 있는 목소리입니다. 저도 역시 그런 적 있어 쉽게 비유를 해 보자면 성대가 활활 불타오르는 느낌을 받습니다. 보통 성악을 할 때 울면 목소리가 잠겨 절대 나오지 않는데, 하늘이 귀해하는 조수미 선생님의 목소리는 역시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하셨네요. 그날 당신의 울림 소리가 하늘에 축복을 내렸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우리나라의 보배 조수미 선생님을 늘 존경합니다.
아들이 새벽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학입시 강의를 하시던 손주은 선생님 일화가 생각납니다. 강의 중간에 소문을 전해들은 수강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울음을 터뜨렸고, 손주은 선생도 더이상 목이메어 강의를 못하고 " 그래! 오늘은 그만하자!" 라며 강의실을 나가셨다죠. 진정성 있는 프로는 아름답습니다.
각자의 선택인 거지.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그냥 한국에 돌아가서 장례를 치르건, 남아서 공연을 하건(슬픔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남아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그건 둘다 함부로 뭐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특히나, 조수미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과 그에 따른 조수미님의 결정에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들이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음
2016년 겨울. 9년만에 왔다가 뱃속에서 떠난 내 아가야. 너무 일이 많고 처지가 그래서 멈출 수 없었어. 몸을 많이 써야했고 배는 딱딱했어.. 꼭 끼는 바지를 넉넉한 옷으로 바꿔줄 수 없을만큼 미련하게 힘든 일을 이어가다 7주만에 겨우 찾아간 병원 초음파로 네심장이 멈추었다는 이야길 듣고 길에 주저앉아 통곡하며 울었다. 아닐거라, 두 곳의 산부인과를 더 가고 일주일 넘게 품고있다가 널 보냈다. 미안하다. 다시 만나자
|눈물주의| (번역) SumiJo, AVEMARIA Recital Paris For My Father 파리공연,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한 슬픔, 조수미 아베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