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자님 댓글 처음 다는 아기엄마예요. 아이를 낳는것 너무 두려워 하지마세요. 저역시 좋지않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내 아이 만큼은 그렇게 키우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지금 잘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 순간 저역시 같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내가 받고싶었던 것들을 아이들에게 주면서 함께 충만함을 느끼게 됩니다.(물질적인것 말고 정서적인것)이렇게 가족이 되어가나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제가 아이를 가지기 훨씬 전에 봤었네요.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아이들이 불쌍하고, 주인공이 진짜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이 너무 절절해서 울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좀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났었네요. 지금의 심정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내가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지고, 무언가를 결정할 만큼 대단한 사람인가? 단지 그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란 그럴 수 있는 존재인가? 그럼, 부모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먼저 들었고......
지금은 그 질문의 대략적인 해답은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자식은 부모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한 인간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기 전에는 "내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만을 걱정했지만, 낳은 후에는 "이 아이가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고,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 지"가 보였습니다.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지'가 더 명확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어떤 완성된 인간으로 아이를 맞이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통해 내가 어떤 인간으로 완성될 건지가 더 궁금해 졌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술을 너무 많이 드시고, 늘 만취가 되는 걸 즐기셨던, 친구 좋아하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 모습을 너무 싫어하셨습니다. 늦둥이였던 저에게 어릴적 부터 어머니가 하신 그 푸념 섞인 저주는 제 인생에 있어, 무의식에 영향을 주었고, 저는 술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필름이 끊어지거나, 인지가 안되는 걸 잘 겪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취 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이유 없이 공격적인 심리가 발동되는 경험들도 하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제가 겪은 상처들의 성격을 잘 알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에 관해 주변(아내)와 공감하고 난 이 후 무의식에서 발동되는 것이 현저히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흑자님이 어떤 선택을 하시든, 감히 말씀드리면, '좋은 아버지'가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흑자님은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무엇이 발현될 지를 잘 알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리기"라고 하던데요, '아! 내가 어떻게 못하는 나의 무언가가 툭 하고 튀어 나왔구나' 라는 걸 아는 상태가 흑자님은 이미 되어 있으신 것 같아서, 아마도, 흑자님이 걱정하시는 그런 미래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예상이 됩니다.
이번, 흑자명화 하시면서 보시는 내내 힘들고, 가슴이 시린 모습을 보이시는 걸, 흑자 헬스를 봐온 사람으로서 너무나 공감이 되고, 흑자님의 자녀관에 관한 이야기와도 연결됨이 있어, 더 이해가 되었던 영상이었습니다.
"내 아이가 하는 질문은 나에게서 답을 얻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질문은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일 경우가 더 많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휴직을 하고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더라도 부성애라고 할 만한 특별한 감정이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되었지만, 생각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달라진 게 없었거든요.. 아직도 내 일상이 중요하고, 내 취미가 중요하고...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를 전업으로 보았습니다. 육아는 노가다 위주의 지루한 일일퀘스트를 깨는 듯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귀엽긴 하지만 그냥 귀여운 인형을 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고, 육아에 최선을 다 하긴 했지만 그것은 그냥 퀘스트니까 한 겁니다. 성격상 완료 못 한 퀘스트가 남아 있으면 찝찝하거든요. 지금 당장 이 아이가 사라지더라도, 물론 슬프기는 하겠지만 언젠가 상처는 아물고 그래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 사고가 나서 내 목숨 vs 아이 목숨 선택하라고 장난삼아 이야기하면, 꼭 그런 걸 선택해야 되냐며 웃어 넘겼죠. 그냥 같이 죽겠다고 농담삼아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농담이라도 선택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가 이제 두돌을 바라보는 지금은, 아이에 대한 마음과 태도가 신기할 정도로 많이 변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 늘어가며 같이 놀고 웃던 추억도 생기고, 때로는 아프다고 말도 하지 못 하며 시름시름 앓는 아이를 보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쓰러워 믿는 신도 없으면서 제발 얼른 회복되기를 빌기도 했습니다.. 훈육을 위해 때로는 조금 큰 소리로 혼내기도 하고, 다치고 와서 안아달라고 팔벌려 오면 안아 달래주기도 하고, 같은 침대에서 곤히 잠든 아이 얼굴을 보며 흐뭇해 하며 잠을 청하기도 하고요... 이제는 이 아이가 사라지면 나도 더는 살아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 목숨과 아이의 목숨을 선택해야 하면 어떡할까 상상해볼 때 이전과 달리 고민하지 않고 아이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경우에는 친자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함께 하는 시간, 함께 쌓아가는 추억이라는 것에는 핏줄을 뛰어넘는 유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러한 유대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소시오패스거나 함께 하는 시간과 함께 쌓은 추억이 너무 적어서 그런 것은 아닐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겁니다.
흑자명화 보면서 우는날이 올줄은 상상도 못했네 ㅋㅋㅋ.. 이제 막 18개월된 아들 아빠인데 아마 아빠가 되보지 못했으면 이 이야기에 이렇게 많은 감정의 파도를 내가 느낄수나 있었을까 싶을정도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결혼과는 비교도 안되게 바뀌어버린 하루하루가 힘들기도하고 행복하기도 한것 같습니다 그냥 영화일뿐이지만 이런 불행이 없는 평온이 행복이라고 느끼고 내일도 좋은 아빠는 아니지만 더 좋아지는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진짜 남자가 어렸을때 아버지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 그런게 카메라씬에서 확 느껴지지. 남입장에서는 인정욕구라는 말로 치부하고 넘어가지만 본인에게는 너무나 큰 감정인 것을 알기에 카메라씬에서 '아이가 아버지인 나를 계속 보고 있었구나' 라는게 확 와닿지.
남자라는 동물이 참 슬픈게, 태어난 아이를 보며 바로 책임감을 가지고 아버지모드로 돌입하기 힘들 수 있으니 옛부터 괜히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따서 이름에 붙이고 '이 아이는 나의 아이니깐 책임감을 가지고 키우자'라는 암묵적인 장치가 필요했던거지. 직접 아이를 출산하는 어머니와는 정말 메커니즘 자체가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