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거란이 전통적인 루트인 요동이 아닌 부여쪽으로 침공루트를 정한걸 보면 아마 발해 요동쪽에 발해의 대군이 집중되있었고 그래서 거란이 요동을 피해 상대적으로 병력 집중이 덜된 발해의 부여부로 정해서 갔을 가능성도 큼 거란침공 2년전까지 요동을 두고 치열하게 대립하고 싸웠기에 발해입장에서 요동을지키기위해 요동쪽에 병력을 집중했을 것이고 거란은 그 점을 노려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여부쪽으로 노리고 바로 상경쪽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음
발해가 3대 문왕 이후 6명의 왕이 교체가 되었다는 기록을 보면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지배권 싸움으로 죽었을 수도 있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통치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10대 선왕이 요동을 정벌한 것도 단합을 위해서 일수도 있고 대인선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거기다가 대인선 때는 백두산 대폭발 징후가 있었을 것이고 그 당시에는 이런 현상은 하늘이 노했다고 생각 것이니 이 때문에 요동 정벌로도 단합을 하려 했지만 단합이 아닌 배신의 용기를 줬거나 오랜 갈등 중에 단합이 깨졌을지도 모릅니다 3만군을 이 끌고 갔던 제상?이란 자가 후에 동란국을 세우는 걸 봐서는 권력 욕이 심했던 인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