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8년 7월 31일, 태봉의 황제 궁예가 죽었다.
궁예는 신라 왕자였으나 버림받고 승려가 된 뒤, 민심을 얻어 후삼국 시대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했다. 특히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혼란한 시대의 민중을 규합하며 철원에 도읍하고 '고려', '마진',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며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 스스로 미륵불을 자처하고 반대 세력을 숙청하며 폭정을 일삼아 결국 왕건에 의해 축출된다. 역사 속에서 미치광이 폭군으로 기록되었지만, 그는 혼란기 신분 사회를 타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혁명가로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한국사 #역사 #역사스페셜 #역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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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8년 7월 31일, 태봉의 황제 궁예가 죽었다.
궁예는 신라 왕자였으나 버림받고 승려가 된 뒤, 민심을 얻어 후삼국 시대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했다. 특히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혼란한 시대의 민중을 규합하며 철원에 도읍하고 '고려', '마진',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며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 스스로 미륵불을 자처하고 반대 세력을 숙청하며 폭정을 일삼아 결국 왕건에 의해 축출된다. 역사 속에서 미치광이 폭군으로 기록되었지만, 그는 혼란기 신분 사회를 타파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혁명가로서 재평가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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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승자의 몫이다
나라를 빼앗기면
정복자들은
자기를 합리화시키려고
거짓말을 한다
삼천궁녀를
거느렸다는
백제 의자왕을 믿는가
궁예도 마찬가지라 본다